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인생 카페를 만났다.


비에이에 있는 '키타코보.'

'설렘두배 훗카이도' 책을 통해 이 카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읽었던 것이 방문 이유의 전부다.


사실 갈 곳이 많아 굳이 이 곳을 방문할 필요는 없었다. 렌트카를 타고 여기저기 명소와 맛집을 찾아다니느라 키타코보는 아예 잊고 있기도 했고.


우리는 비에이 명물인 '마일드 세븐', '켄과 메리의 나무',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 후 후라노로 넘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를 가리켰고 1시간 거리인 후라노까지 갈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탁신관은 하필 문이 잠긴 상태.


탁신관 옆에 서 있는 나무와 눈 언덕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는 게 이곳에서 건진 거라면 건진 것. 삼각대를 펼쳐놓고 사진을 찍는데 눈바람이 휘몰아쳤다. 너무 추웠다. 


거기다 우리 둘 다 화장실이 급했다. 맞은편에 공공화장실이 있었지만 야속하게도 문은 잠겼고...

발만 동동 굴리다가 "그럼 아까 책에서 봤던 그 카페로 가자"고 했다. 탁신관에서 가까웠다. 점심 때 들른 맛집 준페이 근처였다.


그래서 가게 된 키타코보는, 비에이에 다시 찾아갈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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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키타코보는 따뜻함을 가득 채워놓았다. 들어가자 부드러운 재즈 피아노가 우리를 반겼다. 일본음식점처럼 돼 있는 일자형 테이블에 앉자 깨끗한 창밖으로 소복한 눈이 보였다.

소품 하나하나에는 주인의 애정과 정성이 느껴진다. 


주인아저씨가 내려준 콩커피는 '처음 맛보는 커피'였다. 콩과 커피를 반반씩 섞었다는 이곳만의 특색있는 커피는

보리차를 떠올리게 했다. 콩의 고소한 맛과 커피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부드러운 커피차. 추위에 떨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탁 풀어지며 긴 숨을 내뱉었다.





2층에 올라가니 내리는 눈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여우 한 마리가 있다. 와.... 가슴에 뭔가가 쑥 밀고 들어온다.




테라스에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눈, 아름다운 사진, 오밀조밀 사랑스러운 소품, 여유가 흐르는 피아노..

키타코보에 있자니 뭔가 벅차오른다. 행복이 뭔지,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주민들이 편안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주인아저씨와 대화를 나눈다. 새삼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나도 끼고 싶었다. 여기서 살면 행복해요? 저도 이런 곳에서 커피 내리면서 살고 싶어요. 

 

저녁 6시면 이곳 문을 닫는다고 한다. 주인아저씨가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상을 해치지 않는다.


훗카이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난 망설이지 않고 이곳이라고 할 것이다. 

노보리베츠, 오타루, 삿포로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 비에이에서 뜻밖의 선물처럼 만난 곳. 

물론 우리는 운이 좋았다. 키타코보를 찾았을 때 손님은 주민 한명밖에 없었으니까. 어느 블로그에선 사람이 꽉 차 붐볐다고 했다. 우리는 평화롭고 따뜻한 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어 행복했다. 


by 료범 2017. 3. 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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