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던 버스 창밖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68번이나 108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 보면 언제나 지나치던 곳이다. 오른쪽 창밖으로 일렬로 늘어선 상점들이 보였다. 족발가게, 미용실, 밥집, 호프집. 모두 동네가게다. 늘 보던 풍경인데 그날따라 가게 내부가 눈 안에 들어왔다.


대여섯 평이나 됐을까, 작은 식당 안에서 젊은 여자와 남자가 마주보며 늦은 식사를 하고 있다. 둘 다 앞치마를 두른 것을 보니 부부가 주인인 모양이다. 여자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떠 있다. 손님상에 나가는 상이 어떤지 몰라도 그들 앞에 놓인 상은 소박하다. 된장국과 쌀밥, 한두 가지 반찬이 전부다.


식당 옆 미용실에는 중년 여성이 낡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낮에는 붐볐을 미용실을 드라이기 대신 뉴스 소리가 채운다. 족발가게 아저씨는 고기를 썰다 말고 스마트폰을 보며 웃는다. 인기 야식 메뉴인만큼 부지런히 썰어야 손님에게 족발을 내어줄 터인데, 손님이 없는 틈을 이용해 짧은 오락을 즐기고 있는 거다. 가게 내부 모습 하나 하나가 장면이었다. 장면들이 모여 파노라마 스크린처럼 펼쳐졌다.


평소에는 왜 보지 못했을까.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는 분명 누군가가 밥을 지어 팔고 타인의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고기를 썰어가며 살고 있을 텐데. 그들은 꿈에 부푼 신혼부부이거나 이제 막 손자를 본 누군가의 할머니거나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일 텐데.


무심코 한 덩어리로 묶어 슥 보고 지나간 그 자리에도 ‘사람’이 있었다. 그 곳은 각자의 사연과 행복이 고스란히 응집된 삶의 터였다. 버스를 타고 향하는 ‘내 집’에만 따뜻함과 웃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삶을 본 후 느껴지는 것은 동질감이었다. ‘당신들도 나와 같았구나’ 하는 마음.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들과 나는 ‘우리’가 된다.


성석제는 <투명인간>에서 내내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아주 세밀하게. 그들의 삶을 바로 가까이서 보는 듯 묘사해 낸다. 파노라마 스크린처럼, 투명인간 속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성석제는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한다. 이 땅에 사는 대다수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고 어떻게 사라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만수, 금희, 명희, 석수, 옥희, 백수의 삶을 통해서 말이다.


스토리의 끝은 비극적이다. 갖은 고군분투를 감내한 평범한 이들은 결국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공장에 다니며 대학 다닐 꿈에 부푼 명희가 연탄가스를 마셔 바보가 되고, 가족밖에 몰랐던 만수가 수천만 원 빚을 지고, 성공만을 꿈꾸며 가족까지 버린 석수가 공안에 끌려간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나는 만수, 금희, 명희, 옥희, 백수, 석수의 삶이 오늘날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너와 나의 삶은 다르다고 눈길을 돌리지만 사실은 '너와 나는 같다'고 느꼈던 버스 안의 감정이 떠올랐다. 만수를 비롯한 ‘그들’의 삶이 나의 삶처럼 다가왔다.


<투명인간>은 어딘가에 있을 사람,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했던 사람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어줬다. 그리고 하나로 묶인 우리가 서로를 보지 않으면 결국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했다. 보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면 남남이 된다. 타인의 세계는 알 필요 없다는 남남주의는 우리 모두를 투명인간의 길로 인도할 뿐이다.


만수와 옥희 등 투명인간이 된 인물들은 사회 계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이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었다.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너와 나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너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만수가 말하는 것 같았다. 소설 마지막 장에서 성석제는 말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기억에 남는 장면]


언니가 처마에 달린 고드름을 보고는 그걸 따다가 깨끗한 접시로 얹어서 오빠 머리맡에 가져다두고는 말했다.


-오빠, 오빠한테 드릴 게 이거밖에 없어요. 미안합니다.


오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고드름을 따느라고 얼마나 손이 시렸겠느냐고 언니의 빨간 손을 잡아주었다. 만수가 그 광경을 보고는 밖에 나가서 대나무 아래의 깨끗한 눈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가득 담아왔다. 만수의 얼어터진 손 이곳저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엄마가 큰일 아니면 절대로 꺼내는 일이 없는 설탕을 가져왔다. 고드름과 눈 위에 설탕을 살살 뿌려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빙수를 만들어 함께 먹었다.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울다 웃다 했었다. (명희, p.46)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같은 콩으로 담근 장이라도 엄마가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은 온 마을에서 맛있기로 소문났다... 김장을 할 때 우리 집은 무를 넣은 독을 땅에 여럿 묻었다. 동치미가 아니라 짠지였다. 무를 깨끗이 씻고 소금 간을 했을 뿐인데 그게 잘 익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겨울 밤에 그 무를 쫑쫑 채 썰어 양푼에 담고 밥에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벼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으면 어떤 고생도 같이 견뎌나갈 만한 것처럼 생각되곤 했다. 처마 밑 그늘에 매달아 겨울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잘 마른 무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끓인 국은 겨울 저녁의 추위를 달래주었다.


부엌 바닥은 마당보다 두걸음쯤 내려오게 낮았고 컴컴한 구석에 수숫단이며 나뭇단이 쌓여 있었다... 밥을 지을 때 장작으로 불을 때면 불 조절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아까워서 쉽게 쓰지를 못했다. 그러니 아궁이 연료는 북데기나 검불, 솔가지처럼 매운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이기 쉬웠다. 내가 부엌에서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짓다보면 방 안에서는 갈라진 구들 사이로 연기가 솟아올라 동생들이 울고 굴뚝에서 나온 연기에 무슨 밥 냄새라도 숨어 있는지 소와 돼지가 밥 달라고 울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했다. 저녁나절에는 캄캄해서 손가락도 안 보이는 부엌에서 질그릇 함지에 그릇을 부시고 솥을 헹군 개숫물을 담아서 끙끙거리면서 마당 바깥까지 들고 나와서 버려야 했다.


겨울에 홑저고리 바람으로 계곡에 내려가 얼음을 깨고 한 빨래를 광주리에 넣고 머리에 이고 돌아오면 도중에 빨래가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금희, p.70)


by 료범 2015. 2. 24. 15:06